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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정보

국가 유공자와 보훈가족의 영예로운 삶이 유지, 보장되도록 보상금 지급, 교육ㆍ취업ㆍ의료ㆍ대부 등의 보훈정책을 수립하여 지원합니다.

국가보훈처-조직도, 직원검색, 정원, 예산, 홈페이지 등 기본적인 정보 제공
조직도
직원검색
처장 박삼득
차장 이병구
홈페이지 http://www.mpva.go.kr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주소 세종특별자치시 도움4로 9 / 30113 지도
대표전화 1577-0606
박삼득

박삼득

처장

  • 경력

    2019.8~    국가보훈처 처장
    2017.11    전쟁기념사업회(회장), 전쟁기념관(관장)
    2015.7    육군본부 정책연구위원회(위원장)
    2012.11    국방대학교(총장)
    2011.5    육군본부 개혁실(실장)
    2009.4    제5보병사단(사단장)
    2003.12    제15보병사단 38연대(연대장)

정부서비스

기관소식

  • 미국 6.25참전용사 보이드 왓츠, 유엔기념공원 안장식 개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대한민국 땅에서 영원히 잠들다’ - 美 625참전용사 보이드 왓츠(Boyd Watts), 유엔기념공원 안장식 개최 -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미국 625참전용사인 고(故) 보이드 왓츠(Boyd Watts, 만 88세)씨의 안장식이 오는 7일(화) 14시, 유엔기념공원(부산 남구)에서 개최된다고 밝혔다. ? 특히, 625전쟁 제70주년을 맞은 해에 진행되는 첫 유엔 참전용사 안장식으로 그 의미를 더한다. □ 이번 안장식은 미망인과 아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엔사령부 의장대가 함께하는 경건한 의식으로 개회사, 추모사, 조총, 조곡 연주, 안장,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 이 자리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권율정 부산지방보훈청장과 미국정부를 대표하여 다니엘 게닥트(Daniel C. Gedacht) 주(駐)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 유엔사령부를 대표하여 햄자 로지(Hamzah Lodge) 주한 미 해군사령부 의전 장교가 참석할 예정이다. ? 다니엘 게닥트 선임영사는 추모사를 통해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유해 안장 후 참석한 각 대표가 국화꽃을 헌화하며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 보이드 왓츠는 18세의 나이로 625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0년 12월부터 1952년 1월까지 참전하여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 ? 참전 당시 그가 속한 부대는 대구지역의 다리를 폭파해 적이 남하하는 것을 저지했고, 그는 전투 강행군 이후 극심한 추위로 신장 질환이 악화되어 부산에 있는 스웨덴 병원에 입원했으며, 1952년 1월 일본으로 후송된 뒤 귀국했다. ? 참전 이후 공을 인정받아 한국전쟁 종군기장(Korean Service Medal)과 유엔 종군기장(United Nations Service Medal)을 수여 받기도 하였다. □ 보이드 왓츠의 대한민국과의 인연은 625전쟁 참전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 전역 이후 1957년 다시 입대해 경기도 의정부 통신대대에 배치됐고, 이어 미국, 독일 등지에서 복무한 뒤 다시 한국에서 세 번째 복무하고 1970년에 전역했다. ? 또한, 그는 한국인 부인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1991년 20여 년 만에 다시 부산을 방문했을 당시 “새로운 세상이 된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 한국을 좋아하고 부산을 사랑한 그는 2014년 아내와 함께 부산으로 돌아와 그의 생애 마지막 날까지 지냈다. ? 그리고 이제는 부인과 아들이 있는 부산에서 유엔기념공원 동료 전우와 함께 영원한 안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그와 함께 지내오던 아들은 “아버지는 자신에게 항상 자상한 사람이었고 그런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 한편, 국가보훈처에서는 625전쟁 당시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꺼이 헌신한 유엔 참전용사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예우해 드리기 위해 지금까지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을 지원하고 있다. ? 국외 거주하시다 돌아가신 경우, 유가족이 희망 의사가 있을 때 그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와 인천국제공항에서 유해 봉환식을 진행하고, 이어 전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안장식을 거행하게 된다. ? 이번 경우처럼 국내 거주 참전용사는 안장식만을 거행한다. □ 특히, 유엔 참전용사의 부산 유엔기념공원 사후 개별안장은 이번이 11번째로, 지금까지 한분 한분에게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최고 의전과 예우로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 이러한 예우에 대하여 작년 2월, 영국 참전용사 고(故) 윌리엄 스피크먼씨의 안장식 당시 그의 아들은 “제 부친께서 선택하신 장소에서 안장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과 초청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감사의 뜻을 밝힌 바 있다. * 유엔참전용사 유엔기념공원 사후 개별안장 현황 o 2015년 - 프랑스 참전용사 고(故) 레몽 베르나르(‘15. 5월) - 영국 참전용사 고(故) 로버트 맥카터(’15. 11월) o 2016년 - 미국 참전용사 고(故) 버나드 제임스 델라헌티(’16. 2월) -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16. 5월) - 프랑스 참전용사 고(故) 앙드레 벨라발(’16. 10월) o 2017년 -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요한 테오도르 알데베렐트(’17. 9월) o 2019년 - 영국 참전용사 고(故) 윌리엄 스피크먼(’19. 2월) - 네덜란드 참전용사 고(故) 윌렘 코넬리스 드 바우즈르(’19. 3월) - 캐나다 참전용사 고(故) 알베르트 휴 맥브라이드(’19. 6월)- 미국 참전용사 고(故) 커트 드레슬러(’19. 11월) □ 아울러 국가보훈처는 625전쟁에 참전한 195만여 명의 유엔 참전용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예우와 22개 유엔참전국과의 우호증진 등을 내용으로 하는「유엔참전용사의 명예선양 등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지난 3월에 공포하였고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다. ? 특히,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유엔 참전용사와 유가족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기억’, ‘함께’, ‘평화’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첨부파일200406 보도자료(미국 6.25참전용사 유엔기념공원 안장식).hwp
  • ‘20년 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선생' 부부 선정 ‘독립군 부부에서 광복군 가족으로 독립전쟁에 투신하다’- ‘20년 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 선생' 부부 선정 - □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오광선(1896.5.14~1967.5.3) 정현숙(1900.3.13~1992.8.1) 부부를 2020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먼저, 오광선 선생은 1896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13년 삼악학교를 졸업한 후 이웃 마을 출신 정현숙(이명 정정산) 여사와 결혼했다. ○ 독립운동에 큰 뜻을 품은 선생은 1914년 서울로 올라가 종로에 있는 상동(尙洞)청년학원에 입학하였으나, 총독부의 지속적인 탄압과 재정난으로 1915년 문을 닫게 되자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동흥(東興)학교 군사교관과 체육교사로 재직한 후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헌신하였다. ○ 1920년 12월 대한독립군단(총재 서일, 부총재 홍범도김좌진조성환, 부대원 약 3천 5백여 명) 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30년 7월 이청천과 홍진 등이 중국 위하현에 결성한 한국독립당의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하였고, 1934년 2월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하였다. ○ 이후 김구 선생의 지시로 1936년 북경으로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 1945년 11월 귀국하여 ‘대한국군준비위원회’,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12월 육사 8기로 입교하여 이듬해 육군대령으로 임관하였고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준장으로 예편하였다. □ 또한 정현숙 여사는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망명하여 화전을 일구며,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생활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독립군의 뒷바라지에 헌신하여 ‘만주의 어머니’로 불리었다. ○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임정 활동에 참여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 부부의 두 딸 오희영, 오희옥 선생(생존 애국지사) 역시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담하여 선전활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광복군에 입대해 초모(招募)공작 등에 활약하였으며 사위 (오희영의 남편 신송식)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한 독립운동가 가문이다. □ 정부에서는 두 분의 공훈을 기리어 오광선 선생에게는 1962년 독립장을 수여하였고, 정현숙 선생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첨부파일200331 보도자료(4월의 독립운동가, 오광선,정현숙).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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