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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기관정보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활용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조직도, 직원검색, 정원, 예산, 홈페이지 등 기본적인 정보 제공
조직도
직원검색
청장 정재숙
차장 김현모
홈페이지 http://www.cha.go.kr 모바일 홈페이지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청사로 189 / 우 35208 지도
대표전화 1600-0064
정재숙

정재숙

청장

  • 경력

    2018. 8월 문화재청 청장
    2014~2018 문화재청 궁능활용심의위원회 위원
    2013~2018 국립현대무용단 이사 
    2002~2018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등
    1995~2002 한겨레신문 문화부, 한겨레21부, 사회부 기자 
    1988~1995 서울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정부서비스

기관소식

  • 「인제 한계산성」사적 지정 예고 험준한 지역에 쌓은 13세기 입보산성으로 대몽고 승전지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강원도 인제군에 있는 인제 한계산성(寒溪山城)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인제 한계산성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설악산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유적으로, 한계산(해발고도 1,430.4m)을 중심으로 동남쪽과 서남쪽으로 흘러내린 자연적인 암벽지대를 활용해 부분적으로 성벽을 구축하였다. 13세기경 축조된 한계산성은 입지와 양상을 볼 때 시대변화에 따른 성곽 확장과 성벽이 연장된 구조가 잘 나타난다. 성벽과 별도로 축조된 돈후(墩?) 시설물을 갖추고 있어 몽골 침략에 맞서 사용한 입보산성(入保山城)임을 알 수 있으며, 평면구조와 축성방식, 부속시설물의 변화양상을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중세시기 산성이다. * 돈후(墩?): 토축 또는 석축벽을 쌓아서 만든 파수보는 망대 * 입보산성(入保山城): 들어가서 지키는 산성 산성의 둘레는 약 7㎞에 달하며 상성(약 1.7~1.9㎞)과 하성(약 5~6㎞)으로 구분되는데,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에서도 이미 상성과 하성의 존재가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상성은 몽골 침입에 대비해 사용하던 곳이며, 하성은 후대에 반(反)원정책 추진을 하면서 대대적으로 개축하여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상성은 현재 남한 내에서도 매우 험준한 곳에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져 13세기 험준한 곳에 주로 형성했던 산성들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시행한 상성과 하성 시굴조사 결과, 고려~조선 시대의 다양한 유구와 유물을 확인하였다. 상성에서는 총 15개소의 구들 건물지,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성벽 기저부(基底部)를 확인하였고, 청자와 도기 조각 등이 나왔다. 하성에서는 총 18개소의 건물지와 ‘至正十八年(지정십팔년)’명(1358년, 공민왕 7년) 기와 조각, 백자조각 등이 나와 한계산성이 13세기 축조된 이래 고려 말에 다시 대대적으로 보수 또는 증축(혹은 개축)되어 조선 시대까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상성과 하성에서 나온 건물지 유구와 유물들은 시대별 다른 양상으로 한계산성 활용시기 등에 대한 객관적인 고고학적 자료로 판단된다. 인제 한계산성은 고려 시대 몽골과의 항전지이자 승전지로서, ?고려사(高麗史)? 기록에 따르면 1259년(고려 고종 46년) 몽골에 투항한 조휘 일당이 몽골 군사를 끌고 와서 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점령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산성을 지키고 있던 방호별감 안홍민(安洪敏)이 야별초군(夜別抄軍)을 거느리고 나아가 습격해 모두 섬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인제 한계산성은 30년 여몽전쟁의 최후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몽골 영향 아래 있던 쌍성총관부의 세력 확장을 저지한 국난극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또한, 대몽항쟁기 5차와 6차 침입 당시 만든 입보산성으로서 성곽 변화과정과 고려말 조선초 공민왕의 반원정책, 동해안 일대의 왜구 침략 대비 등을 목적으로 축조한 성곽 양식 등을 비교연구할 수 있는 점에서도 학술적·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대몽항쟁: 1231년부터 1259년 7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한 몽골에 맞서 전국에서 일어난 항쟁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사적지정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안내 홍보물첨부파일10723 「인제 한계산성」사적 지정 예고(붙임2).pdf첨부파일20723 「인제 한계산성」사적 지정 예고(본문).hwp
  • 여주 효종 영릉(寧陵)ㆍ세종대왕역사문화관 정기휴일(월요일) 특별개방 - 여름 휴가철 맞아 7.29.~8.19. 4주간은 월요일도 관람 가능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소장 류근식)는 여름 휴가철을 맞이하여 오는 29일부터 8월 19일까지 4주간, 정기 휴관일인 월요일에도 여주 효종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과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특별 개방한다. 이번 특별 개방은 유동 인구가 많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휴관일인 월요일에도 관람객들이 영릉을 방문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을 널리 소개하고자 기획하였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평소와 같다. 다만, 현재 하고 있는 영·영릉(英·寧陵) 유적종합정비 공사 때문에 세종대왕릉(英陵)은 특별 개방에서 제외한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자리한 경기도 여주시는 수도권과 지방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여름 휴가철에 유동 인구가 많으며, 지난해 여름 휴가철 특별개방 기간에도 3,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바 있다.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임금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으로, 효종이 돌아가시자 처음에는 구리시에 조성되었으나, 1673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조선 17대 왕 효종은 군제 개편과 군사훈련 강화 등 병자호란으로 피폐해진 민생 복구에 노력하였고, 대동법과 상평통보 시행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겼다.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영·영릉(英·寧陵)의 주인인 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선왕릉을 소개하고자 2017년 5월 개관하였으며, 한글창제 등 세종대왕이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과 애민 정신을 느껴볼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전시되어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즐거움과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관람 환경을 꾸준히 개선하고, 국민에게 개방하여 더 많은 관람객들이 자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첨부파일10723 여주 효종 영릉(寧陵)ㆍ세종대왕역사문화관 정기휴일(월요일) 특별개방(붙임2).pdf첨부파일20723 여주 효종 영릉(寧陵)ㆍ세종대왕역사문화관 정기휴일(월요일) 특별개방(본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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